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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살이

삼월에 장마? 그리고 기침

by 낭구르진 2011. 3. 25.

보통 여기 캘리는 겨울이 우기랍니다. 그래도 3월이면 봄이여야 하고 우기는 이미 지났어야 하고 옷장의 반팔을 하나씩 꺼내 입기 시작하는 계절이거든요. 그리고 5월이 되면 수영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는게 이곳 날씨인데....

벌써 일주일째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왔다 갔다 하더니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네명의 가족 구성원중에 세명이 감기를 크게 앓고 넘어 가면서 이번 감기와는 작별을 고하는가 싶더니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남편이나 아이들에 비하면 세발에 피도 안되게 지나가는 감기인듯 한데요 문제는 기침입니다. 집에서 있을때는 기침이 그리 심하지도 않는데 사무실에만 가면 유난스러워 지더군요.
워낙 조용하기도 하고 일단 실내이니 공기가 좋지 않아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평소에도 달갑운 편이 안되는 다른 부서의 "그녀"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감기든 목소리에 괜찮느냐로 시작하던 그녀는 본인이 원하는 바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알러지가 생긴것인지 기침이 시작되었고 멈추기가 힘들었습니다. 워낙에 조용하던 사무실인지라 기침소리가 유난스럽게 울렸고 그 가운데서도 그녀는 쉴새 없이 본인이 취하고자 하는 정보에만 열중하더군요. 전화기를 잡고 있는것 보다 5분간의 휴식을 제안하는 편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도 바보같이 저 역시도 그녀의 통화를 받아 주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항상 그녀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면 기분이 다운됩니다. 
제가 좀 흥분을 해서 감정적인 대응을 했다는 사실 (웬만해서는 흥분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과 극 대비가 되면서) 과 
안되는 영어로 쉽게 할수 있는 설명을 어렵게 풀어놓았다는 사실이 주위에 부끄럽기도 하고 절망감이 들기도 하거든요.
물론 다행인것은 잠시잠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기침이란게 말만 안 해도 좀 괜찮아 질것 같은데 오늘은 유난히 방문과 통화가 잦았습니다.
또 말을 시작하게 되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기침 때문에 웬지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마져 들었습니다. 
미국사람들이 기침에 특히나 민감하더라구요. 때문에 자리를 피해주는게 낫겠다라는 생각마저 들 무렵
매니져가 와서 일찍 퇴근하는게 낫겠다라고 가서 쉴것을 제안해 주었습니다.
속으로는 "얼씨구나" 쾌재를 부르며 기다렸다는듯이 짐을 싸고 나왔습니다.

오는 길에 평소 시간에 얽매혀 못하고 있던 시계 배터리도 갈았습니다. 
제가 미국 생활에 적응이 되긴 했나 봅니다. 한국서 3천원에 갈던 배터리를 여기서 10불,20불에 갈면서도 비싸다는 생각이 예전만큼 들지 않으니 말입니다.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고 이런 예기치 않은 휴식 같은 기분을 저만큼이나 좋아하는 아들을 생각하니 학교로 가야 겠다 싶더군요. 스쿨버스가 없는 곳이다 보니 특히나 이런 비오는 날은 픽업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만 20-30분이더군요. 어쨌거나 그렇게 기다려서 친구의 우산을 나눠 쓰고 있는 아들 얼굴이 보입니다. 예상대로 기대 하지 않았던 제 차를 보더니 아들은 환하게 웃습니다. 구여운 넘~~~ !!!! 아들 왈~~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랍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최근에는 제가 입맛이 조금 변한것이 예전만큼 라면과 떡뽁기의 맛을 모르겠구요. 웬지 밀가루맛이 강하기만 한것 같았고
차가운 것과 신맛나는 과일도 잘 먹지 못하거든요. 이러고 보니 완전 할머니 입맛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네요.
헌데 오늘 끓여 먹은 라면은 빗속의 허기 때문인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슬며시 내일도 기침이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철없는 바램이 생기기도 하는걸 보니..
전 아직 건강하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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