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 5월
기다리던 우리 딸이 태어났다.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더 없이 감사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적응이 되기도 전에 낭굴의 출장이 결정되어 졌다.
자신이 없었다. 두 아이를 온전히 혼자서 봐야 한다는게..
그렇게 처음 이주간을 다녀왔고..
낭굴이 돌아오자 마자 정현이는 고열로 일주일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리고 다시 두달간 낭굴은 미국으로 출장을 가야 했다.
그때 부터 이미 미국 본사로의 발령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그 결정과 관련해서 내 회사 문제도 있고 나역시도 한달 미국을 나갔다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헌데 출산 휴가는 이미 끝나가고...정현이를 맡길수 있는 곳이 여의치 않았다.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 한다는 내 지론이었지만 할수 없이 정현이를 친정엄마께 부탁을 했고 부산으로 내려 보내야 했다.
종호를 데리고 9월 한달간은 미국으로 갔다가 먼저 돌아왔고 10월 중순 낭굴이 돌아오면서 비자 수속에 들어갔다. 11월 비자 발급을 받았고 낭굴은 먼저 미국으로 들어갔다. 그때가 11월 마지막 날이다.
낭굴을 보내고 난 해외 이삿짐을 꾸리고 보내야 했고 남은 짐들도 국내 이사로 여기저기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창원 언니네로 내려와 한달간을 지냈다.
설을 보내고 지난 1월 30일 드디어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모든게 처음이라 분주했고 지치기도 했고 힘들었지만 우리의 선택에 따른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지만 그 보다는 우리 손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우울한 경제상황과 치솟는 환율이 더 심적 부담이 되었다.
이제까지 해온것 만큼만 앞으로 열심히 하면 잘 적응할수 있겠지?
하루하루 화이팅을 외쳐본다
미국살이